2학년 2학기가 끝나고, 내 성적은 리버스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내가 왜 공부해야 하는지, 대학에 왜 들어왔는지, 대학에 졸업해야 되는 이유 같은 명확한 지향점은 있었지만 그냥 공부 자체를 하기가 싫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휴학을 하거나 그냥 남은 2년을 다니기에는 집에서 밀린 애니나 정주행하면서 성적은 더 나락으로 빠질 내 미래가 너무나도 뻔히 보였기에 도저히 그럴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군대 문제부터 해결하자".
나의 경우 4급 보충역, 소위 '공익' 판정을 받았고 공익근무는 번번히 신청해도 떨어지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 대신 산업기능요원 제도를 이용해 입사하게 되면 2년(정확히는 23개월)간 회사 근무를 하면서 돈도 보통 신입사원과 비슷하거나 약간 적은 수준으로 받으면서 일할 수 있다.
나름 그럴듯한 큰 그림이지만 어찌 보면 가장 큰 목적은 그냥 휴학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12월 중순, 종강하자마자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준비를 시작하고 보니 해야할 게 생각보다 많았다.
일단 기본적인 자소서와 포트폴리오조차 정리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고, 그래서 우선 포트폴리오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은 너무나도 막막했다.
사실 말이 자유 양식이지 진짜 자유롭게 만들었다가는 (부정적인 의미로) "자유로운" 회사를 2년간 다녀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선 웹사이트를 만들지 아니면 PDF로 정리할지부터 고민했는데,
많은 내용을 담기를 좋아하는 내 특성상 웹사이트를 만드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PDF 수십 장이라면 읽으면서부터 피곤하겠지만 웹사이트 10페이지 정도는 PDF에 비해 읽는 피곤함이 덜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도 있고,
PDF는 보통 위에서 아래로 읽지만 웹사이트는 읽는 순서도 자유롭기 때문.
여러 포트폴리오 자료를 찾아보다 보니 아래 사이트가 눈에 띄었다.
"웹 개발자 포트폴리오" 라고 치면 구글 검색 상위권에 나오는 사이트였다.
이거보다 디자인이 괜찮은 사이트들은 여럿 있었지만, 가독성이나 내용 측면에서는 여기만큼 깔끔한 사이트가 없었다.
결국 중요한 건 내용이다 보니 내 포트폴리오도 이 사이트를 많이 참고했고, 여기에서 본 내용을 베이스로 나만의 사이트를 꾸며보기로 했다.
포트폴리오용 템플릿을 찾아보다 보니, 강렬한 디자인의 포트폴리오가 가장 먼저 눈에 밟혔다.
다른 템플릿에 비해 기본으로 제공하는 디자인도 많아 커스텀할 부분도 많이는 없을 것 같아 보는 순간 이걸로 가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사이트에서는 내 개성을 최대한 살려보고자 했다.
어쩌면 당연한 거긴 한데, 개발자 포트폴리오는 제목이 모두 영어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나는 발상의 전환으로 오히려 '이걸 우리말로 써 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했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사이트 제목부터가 "포트폴리오"가 아닌 "개발 꾸러미"... ㅎㅎ
다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기술 용어(예 : View, Components 등등...)를 우리말로 옮기게 되면 너무 장난같아 보이기도 하고 가독성도 떨어지는 일이라 하지 않았다.
사이트를 만드는 데에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리액트 자체는 처음 사용해 봤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편했다.
기존 JS랑은 다르게 오류가 있을 경우 컴파일 단계에서 잡아내는 점이 마음에 들었고, HTML과 JS 구문을 구분해 별도로 작성할 필요 없이 사실상 하나의 생태계 안에서 돌아가는 듯한 느낌?도 좋았다.
다만 이 개발 과정에서 가장 오래 걸린 것은 포트폴리오 내용 작성이었다.
공모전이나 대회 제출용으로 만든 프로그램의 경우 기본적으로 어떤 프로그램인지, 무슨 역할을 하는 프로그램인지 등은 작성이 되어 있었지만, 해당 공모전/대회 양식에 맞추어 작성하다 보니 이 내용을 그대로 포트폴리오로 옮길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러한 내용들을 한 양식으로 모으고, 넣을 사진도 사이트에 맞춰 작성하는 등 일련의 과정을 거치다 보니 2주라는 시간이 정말 순식간에 지나갔다.
포트폴리오는 어찌저찌 만들어져 가고 있고, 이제 남은 것은 자소서다.
내가 지원하려는 회사는 문항 4개의 최대 9999자까지 작성할 수 있는, 사실상 자유 분량의 자소서를 요구했다.
거의 문항당 1000자 내외의 Java를 닮은 장황한 1차 초안을 완성하고 학교 진로취업센터의 도움을 받아 자소서를 수정했다.
이때 첨삭 안 받았으면 큰일날 뻔했다.
50분의 상담을 마치고 거의 멘탈이 털렸다. 일단 수정할 내용도 너무 많고 기초가 안 잡혀져 있는 느낌이었는데 이런 부분에서 정말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여기에서 나온 피드백을 바탕으로 전반적인 자소서의 내용을 수정하고 나니 글이 훨씬 깔끔해졌고 합리적인 분량으로 글이 마무리가 되었다.